[독서노트] 불편한 편의점2
드라마 보다가 슬픈장면이 나오면 울컥한다. 혼자 눈물을 훔친다.
그래서 사실 드라마를 안보는지도 모른다. 언제 눈물 훔칠지 모를까봐. 물론 이거 중년아저씨의 갱년기 증상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말이지. 장인어른이 자주 눈물을 훔치시는걸 보아온 나로서는 내가 이런 증상이 나타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드라마 뿐이 아니다.
오랜만에 집어든 소설책 읽다가 울컥한다. 눈물이 고인다. 이상한편의점 2. 작년에 읽은 후속편이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사실 잘 안난다. 읽어내려 가다보니 1편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작년에 썼던 불편한 편의점 1권의 독서노트
하하. 이런. 이 책이 작년 여름에 나왔는데, 나는 이제서야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그동안 소설 읽기에 무척 소홀했다. 특히 한국 소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 나와야 겨우 손을 대거나, 아니면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나 가야 소설코너를 잠시 둘러본다.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어내려가니, 다시금 책읽는 재미에 빠졌다.
글이라는 것은 작가의 산물이다. 당연한 말이다.
이 말은 곧 글은 작가의 경험을, 그것이 간접경험이든, 그대로 반영한다. 투영한다. 글을 읽다보면 어느샌가 작가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청파동 ALWAYS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한잔 하면서 서로 얘기를 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작가는 나와 같은 시대에 학교를 다녔으니 그 글들은 익숙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이상한 편의점이라고 기억을 하곤 다시 책제목을 보니, 불편한 편의점이다.
마지막 장에서 불편한 편의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불편한 편의점. 매장도 작고 물건 종류도 부족해 동네 사람들이 불편한 편의점이라고 불렀어. 그래서 너 불편한 거라고. 알겠니? 그러니까 내 탓 하지 마.”
그리곤, 소설책 두권에서의 몇년간의 시간을 몇 줄로 회상한다.
‘불편한 편의점’에 대해 시현은 생각했다.
정체불명 노숙자 아저씨 덕에 불편했던 편의점에서, 묘한 감정 때문에 불편하다 투덜대는 청년이 있는 편의점이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코로나와 백신, 변이 바이러스와 부스터 샷, 점장이 된 오 여사와 사장님 아들의 개과천선, 그리고 시현 자신의 좌절의 날과 재기의 시간, 마지막으로 옆에서 나란히 걷는 쾌활하고 태평한 성격의 남자친구를 만난 것까지, 모두 이상하고 신기한 삶의 우연인 것만 같았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아래는 소설책 속에서 마음에 남아 울컥했던 대목들이다.
/점장 오선숙/
선숙은 이제 아들을 닦달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고시 같은 걸 보라고도 안 한다. 결혼하라는 말도 안 하기로 했다. 아들 세대 앞에 놓인 세상 형편이 자신이 젊을 때의 기준과 다르다는 걸, 아들의 설명을 듣고 인정한 뒤에 일어난 변화였다. 자신과 분리되려는 아들의 모습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서로의 차이를 알게 되었고, 거리를 지키게 되었다.
다 큰 아들의 삶 역시 ‘될 대로 되겠지!’였다. 엄마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용인하고 나자 아들이 무슨 일을 해도 믿고 지지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을 많이 못 버는 일이어도 그것이 아들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자신도 좋아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건 무슨 인간 알바몬도 아니고, 이력서 네 장이 꼬박 알바 경력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레스토랑 서빙, 뷔페식당 설거지 담당, 맥도날드 주방, 갈빗집 숯불 담당, 중국집 배달 알바, 택배 상하차, 이벤트 진행 요원, 보조출연 알바, 떡집 알바, 얼음집 알바, 심부름센터 알바, 이삿짐센터 알바, 김밥천국 알바, 예식장 서빙, 상조회사 알바, 병원 폐기물 처리 알바, 쇼핑센터 주차 안내 알바, 물류센터 분류 알바, 성인 디스코텍 보안 요원 알바까지…… 이 인간은 자신의 알바 이력에 유일하게 없는 편의점을 채우기 위해 지원한 것처럼 보였다.
나이 43. 미혼. 가족 관계 없음. 자격증 없음. 서울에서 중고등학교 졸업 후 유명 대학의 지방 캠퍼스 졸업. 그래도 대졸이고 멀쩡한 사람이 평생을 알바만 하고 살아왔다니, 참으로 성실하지만 막막한 이력이었다.
곽 선생을 보낸 기념으로 선숙은 그의 흉내를 내보았다. 간밤의 CCTV를 돌려 본 것이다. 밤 11시쯤, 곽 선생의 딸이 편의점에 들어섰다. 리넨 재질로 보이는 면 티에 통이 큰 바지 차림의 그녀는, 편의점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선 채 카운터의 곽 선생을 응시했다. 뒤이어 곽 선생에게 직진했다. 곽 선생은 마치 오래 기다린 손님을 맞이하듯 그 자리에서 미동이 없다가, 무어라 입을 열었다. 딸이 마스크를 벗었다. 큰 입으로 짓는 미소는 아름다웠고, 눈은 모니터 화면을 뚫고 나올 듯 반짝였다. 곽 선생이 손을 뻗었고 딸이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두 사람이 마주한 장면이 한참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대화도 들리지 않는 해상도 낮은 화면임에도 선숙은 연속극 보듯 빠져 들어갔다. 자신이 힘을 보탠 그 재회 장면에 흡족해하면서.
/소울스낵/
한 달 뒤 소진은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다. 합격한 회사는 브랜드 홍보 전문 회사였다. 이번엔 회사 조사부터 철저히 했다. 만만치 않은 업무 강도를 지닌 회사였지만 블랙은 아니었고 작지만 실속 있는 곳이라는 평가였다.

소진은 최종 면접에서 자신을 가물치라고 소개했다. 소울 스낵 자갈치를 먹으면 가물치로 변신하는 슈퍼파워를 지닌 인재라고 씩씩하게 발표했다.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특별한 사연을 설명했다.
대표는 좋은 이야기가 좋은 브랜드를 만든다며 소진을 합격시켰다.
/꼰대 오브 꼰대/
예전 같으면 다짜고짜 훈계를 했겠지만 이제 좀처럼 나설 수 없었다. 홍금보 녀석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꼰대는 자기 말만 한다고. 심지어 버럭 하면 상꼰대란다. 제길, 꼰대 낙인에도 굴하지 않던 그였는데, 편의점 야간 알바까지 뭐라고 하니 기가 죽었다.
이제 이렇게 죽어지내야 하는 건가? 가장이고 뭐고 그냥 자식들과 아내 말에 굽실대며 돈이나 벌어 오면 되는 건가? 돈도 잘 못 버는 요즘은 진짜 죽어지내는 게 맞겠다 느끼며, 최 사장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아내가 기억해내라는 듯 노려봤고, 최 사장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눈만 끔뻑거렸다.
“아들 상처 준 말도 기억을 못 하니 아들이 아빠 멀리하는 것도 이해를 못 하는 거야.”
아내가 젓가락을 탁 내려놨다.
“알았어. 미안해.”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미안하단 말이 눈물 버튼을 누른 듯 울컥해왔지만 아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최 사장은 심호흡을 하며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았다. 입술을 깨물며 안간힘을 쓰는 그를 묵묵히 바라보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외식 와서 이런 말 해서 나도 그러네.”
“겁이 나.”
아내가 그의 말에 집중해주는 게 느껴졌다. 최 사장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모든 게 걱정이야. 내가 꼰대라 욕먹어도 소신을 지켜야 가게도 가족도 지킬 수 있다 생각했다고……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데 이제 그게 안 통하니 더 겁나고 두렵다고.”
아내가 그의 손을 잡았다. 최 사장은 눈을 똑바로 뜨려 애썼다.

<투 플러스 원>
“나이가 들수록 자기에게 있는 세 가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더라. 먼저 내가 잘하는 일을 알아야 하고, 그다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더라고.”
“안 먹는다고? 야! 밍기뉴, 우리 솔직해보자. 너랑 나 같은 체형들은 밥 먹었다고 뭘 더 못 먹지 않아. 그건 선택의 문제지,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잖아. 그치? 그리고 이 돈가스 삼각김밥 완전 실해. 돈가스 샌드위치보다 백 배 나아.”
<밤의 편의점> 황근배, 홍금보
연극이 막을 올렸고 5주간의 공연 동안 근배의 엄마는 여섯 번이나 공연을 관람했다. 암 투병 중 현저히 떨어진 컨디션에도 아들의 공연을 관람한 엄마는, 행복해했다. 엄마는 근배의 연기와 극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균 관객 열 명이 채 안 되어 흥행 참패를 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연극을 보며 좋았단 말만 반복했다. 근배는 이 순간이 자기 인생의 클라이맥스라고 느꼈다. 다시 무대에서 기똥차게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고 명성을 쌓은들 엄마가 죽고 나서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선배.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야. 인생작 썼더니 코로나 터지고, 코로나 지원받았더니 코로나 걸리고, 대본 고쳤더니 주연배우 울골질하고…… 진짜, 선배야말로 문제 중의 문제다.”
<오너 알바> 민식이
“비교 암이거든.”
“응?”
“비교하면 암 생겨. 그러니까 비교 따위 하지 말고 자기답게 살면 된다니까. 강 사장님, 아직 창창하잖아.”
“비교 암이라…… 아, 진짜 머릿속에 암 들어찬 것 같아. 형.”
민식은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으며 말했다.
“엄마. 이제 돌아와.”
엄마는 말이 없었다.
“내가 데리러 갈게. 내일이라도 당장. 내가 이제 낮에 자고 밤에 일하러 가니, 엄마랑 집에서 마주칠 일 별로 없어. 엄마, 나 이제 편의점 도시락도 잘 먹어. 밥 차려줄 것도 없고 가게 팔겠다고 설치지도 않을게. 그러니까 이제 돌아와. 내가 데리러 갈게. 응?”
여전히 전화기 너머에는 침묵이 그득했다. 민식은 울먹임이 저 너머로 들리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그때 엄마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리러 갈게 아니고, 모시러 갈게라고 해야지.”
“으응. 모시러 갈게. 엄마 모시러 갈게요!”
이번에도 짧은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다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렴.”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노트] 애덤 그랜트의 기브앤테이크 Give and Take_추천! (0) | 2023.01.31 |
---|---|
[독서노트] 아주 작은 습관의 힘 (0) | 2023.01.31 |
[독서노트]가진 돈은 몽땅 써라 #독서노트 #일본 (0) | 2023.01.30 |
[독서노트]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정신과 (0) | 2023.01.30 |
[독서노트]데일리 크리에이티브 #책읽기 #자기계발 (1) | 2023.01.30 |